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📜 조선시대 4대 사화 완전정리 — 무오사화·갑자사화·기묘사화·을사사화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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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오·갑자·기묘·을사사화 완전정리 조선시대 4대 사화는 무오사화 (1498), 갑자사화 (1504), 기묘사화 (1519), 을사사화 (1545)다. 네 번의 사화는 권력 다툼과 명분, 그리고 인간의 감정이 어떻게 역사의 비극으로 변하는지 보여준다. 이 글은 각 사화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, 주요 인물(출생~사망)과 배경·원인·전개·사후 변화를 술어체로 정리한다. ⚔️ 무오사화(1498, 연산군 4년) — 글 한 줄이 목숨을 바꾼다 연산군은 즉위 초반 훈구 대신에게 의존하였다. 훈구는 사림을 견제할 기회를 찾다가 김일손이 사초에 실은 조의제문 을 문제 삼았다. 조의제문 이 세조의 즉위를 부정적으로 서술한다는 해석이 확산되자, 연산군은 강경 대응을 선택하였다. 이로써 사림은 대대적으로 처벌되었고, 학문과 기록이 정치적 흉기가 되었다. ✅ 조의제문(弔義帝文) 조선 성종 때 사림파 학자 김종직 이 쓴 글입니다. 중국 초나라의 의제(義帝) 가 간신 항우 에게 죽임을 당한 사건을 애도하는 글인데, 실제로는 이를 빌려서 조선의 세조(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인물) 를 비판한 우회적 풍자문 이었어요. 📌 즉, 표면상은 중국 역사 이야기지만, 숨은 뜻은 단종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 하고, 권력 찬탈을 비판한 글이었던 거죠. 이 글이 후대(연산군 4년, 1498년)에 문제 삼아져서, 결국 무오사화 의 직접적인 발단이 되었습니다. [무오사화 관계도] 연산군 훈구(공격) 사림(피해) 조의제문(트리거) 김종직 · 김일손 기록 👥 무오사화 주요 인물 연산군(燕山君, 1476~1506 ) — 성종의 아들로 즉위하였다. 정치를 불신과 공포로 운영하였고, 무오사화를 통해 사림 탄압을 본격화하였다....